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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시와 처벌 서평 미셸 푸코의

집들이선물추 2022. 6. 15. 15:35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미셸 푸코(19261984), 푸코는 오래전부터 들었지만 그의 책을 읽을 기회가 별로 없었다. 푸코의 대표 저서 광기의 역사 성의 역사 모두 유명하다. 뭘 읽을까 하다가 분량을 보고 감시와 처벌을 받았다.

이 책은 '어떻게 감옥이 탄생했을까?' '현대에는 왜 감옥이 형벌의 주류가 됐는지, 그 배후에 어떤 권력과 사회의 이해관계가 작용하게 됐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이 말이 뭐냐고? 감옥에 가두는 것이 19세기 전만 해도 형벌의 주류가 아니었다는 뜻이다.

# 전근대의 잔인한 형벌, 감옥은 주류가 아니었다

전근대의 형벌은 잔인하기로 유명하다. 산 채로 고기를 잡을 수 없다. 뜨거운 물에 담글 것, 말이나 소에 매달아 사지를 찢는 거열형 등. 말만 들어도 섬뜩하다.;; 그런데 왜 이런 잔인한 형벌이 현대에 들어와 사라졌을까.

아마 대부분은 민주주의 발전에 따라 인권이 존중되면서라고 생각할 것이다. 틀렸다고는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중요한 요인은 아니다. 유순해진 형벌과 징역이 주류가 된 현상은 물밑 정치권력이 자신의 이해에 따라 스스로 선택한 부분도 있다.

1757년 로베르 프랑수아 다미안은 루이 15세를 암살하려다 실패하고 처형된다. 당시 기록에 섬뜩한 처형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며, 이 책의 도입부에도 등장한다. 반역죄는 어느 나라에서나 가장 중죄로 다스린다.

전근대의 형벌이 잔혹했던 이유는 그것이 바로 왕권을 과시하는 행동이었기 때문이다. 범죄행위는 곧 이 땅과 신민을 다스리는 왕에 대한 반항이기도 했다. 따라서 잔혹한 형벌을 광장에서 공개적으로 백성들에게 보여줌으로써 권력에 대한 공포심, 위엄 등을 보였다.

옛날에는 별다른 오락이 없었기 때문에 이런 사형식은 일종의 축제였다. 군중은 강력범죄자에게 조롱과 모욕을 주기도 했다. 그러나 반대의 경우도 있었다. 그 범죄자는 공공연히 부당함을 호소하기도 했다. 만약 군중이 거기에 공감이라도 하면 폭도가 되어 집행인을 해치고 정부에 반항하기도 했다.

원래 전근대 감옥은 잠시 동안의 구류수단에 불과했다. 혹은 경미한 범죄에 대한 처벌에 불과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권력자들은 이 감옥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단순히 죄인을 처벌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활용하는 것으로 방향을 잡은 것이다.

죄수를 교정·교화해 이들이 사회에 나와 다시 도움이 되는 인간이 될 수 있도록 한다. 그들에게 도덕을 가르치고 반성시키다. 또 노동시켜 게으른 정신을 없애고 노동의욕을 고취한다. 사회에 나가서는 도움이 되는 기술을 가르친다.

중앙 감시탑으로 원형 감옥을 효율적으로 감시하는 체제, 판옵티콘

# 감옥의 확대는 새로운 권력의 탄생이었다

이는 사회의 전반적인 변화와도 관련이 있다. 18세기를 거치면서 자본주의가 발전하고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급격한 인구 증가가 일어난다. 그러자 방랑자와 무위도식자가 늘었고, 또 여러 잡범죄가 늘어났다. 이들을 모두 강력 처벌하기보다 오히려 감옥에서 갱생시키거나 노동력으로 활용하는 것이 효율적일 것이다.

그러나 교정 주장은 진정한 속내가 아니었다. 통계를 보면 감옥이 전면에 나선 이후에도 범죄율은 오르고 재범률까지 높아졌다. 교도소의 역할은 교정이나 범죄 감소가 아닐 수 있다. 오히려 공생을 바라기도 한다.

교도소는 다양한 규율과 체계를 만들고 통제, 감시하는 수단이었다. 이것은 권력이 더 효과적으로 다수를 통제할 수 있는 실험의 장이었다. 규율이란 감옥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직장 병원 학교 군대 등에서도 이미 사회화 명목으로 규율이 들어갔다.

일사불란하게 다수를 분류하고 훈련시키고 통제한다. 그렇게 다양한 사회집단이 효율적인 체계를 갖게 할 필요가 있었다. 이는 근대화이기도 했지만 새로운 복종의 메커니즘이기도 했다. 유순해진 형벌이 어쩌면 이 사회 전체의 감시와 통제 수립에도 관련이 있는 것이다.

과거의 권력은 폭력을 행사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비밀스럽고 교묘해졌다. 감옥의 확대는 심리학 건축학 의학 행정학 등 권력에 필요한 여러 학문을 발전시키는 결과도 낳았다. 화려하고 잔인한 권력이 영리하고 교묘한 권력으로 변모한 것이다.

미셀 푸코(19261975) #결론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감옥제도의 확립이 보다 체계적이고 거대한 감시, 억압사회의 성립과 함께 한다는 주장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푸코는 어떤 결론과 대안도 제시하지 않는다. 단지 현상을 설명할 뿐이다.

푸코는 책 말미에 나는 여기서 이 책을 그만둔다. 이 책은 현대사회에서 규격화의 권력과 지식 형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의 역사적 배경이 될 것이라고 애매한 결말을 맺었다. 답은 우리가 스스로 찾아야 한다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감옥을 없애고 다시 예전처럼 몸에 고통을 주는 형벌 중심으로 돌아가야 하는가. 그리고 그것을 다시 공개해 군중이 지탄할 수 있도록 해야 하는가. 현재도 강력범죄자에 대한 뉴스가 나오면 사람들은 저런 악마를 내 세금으로 먹이는 게 싫다 사형제를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서도 19세기 감옥이 확대되자 "범죄자를 재우고 먹이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 "민중에게 아무런 교육 효과가 없다"고 반응이 나왔다고 한다. 다만 나는 예전처럼 돌아가는 것도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또한 책에서는 범죄자 대부분이 가난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그 편견과 인식이 계속 강화된다고 말한다. 범죄자를 어떻게 다뤄야 할지는 이 책의 논점이 아니다. 그보다 더 큰 차원의 논의가 필요하지 않을까. 좀 더 근본적인 구조를 봐야 하지 않을까. 이 책은 그런 논의의 시작을 열어줄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쉽지 않았어. 푸코의 책 가운데 그나마 짧더라도 500페이지 가까운 분량. 정말 이렇게 집중이 안되는 책은 오랜만이다. 사실 제대로 이해했다고 말할 수는 없어. 푸코의 학문 업적은 인정하더라도 솔직히 더 쉽게 설명할 수 있는 내용을 왜 이렇게 어렵게 쓰는 걸까.

어려운 용어의 남발, 불친절한 단락 구성, 접속이 부자연스러운 문장 등을 볼 때 글의 점수에서 이 책은 혹평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번역이 문제인가 싶었는데 그냥 후코가 글을 어렵게 쓰는 것 같다. 앞으로 푸코의 책을 다시 읽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흐흐흐ㅜㅜ